가톨릭 나가사키 대교구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가톨릭 나가사키 대교구는 일본 나가사키현을 관할하는 로마 가톨릭교회 대교구이다. 1866년 베르나르 프티장 신부가 나가사키에 일본 사도좌 대리구 청사를 설치하면서 시작되었고, 1891년 교구로 승격되었다. 1959년 대교구로 승격되었으며, 현재 후쿠오카, 가고시마, 나하, 오이타 교구를 관할한다. 역대 교구장으로는 하야사카 규노스케, 야마구치 아이지로, 사토와키 아사지로, 시마모토 가나메, 타카미 미츠아키, 나카무라 미치야키 등이 있다. 대교구는 7개의 지구로 나뉘어 71개의 소교구, 1개의 준소교구, 60개의 순회 교회, 1개의 집회소를 운영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나가사키시 - 나비 부인
나비 부인은 자코모 푸치니가 작곡한 오페라로, 미국 해군 장교 핑커턴과 일본 게이샤 초초상(나비 부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며, 피에르 로티의 소설 『마담 크리상템』 등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되어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다양한 해석과 파생 작품을 낳아 영화,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재탄생되었다. - 일본의 로마 가톨릭 교구 - 가톨릭 사이타마 교구
가톨릭 사이타마 교구는 사이타마현, 도치기현, 군마현, 이바라키현을 관할하는 교구로, 1939년 요코하마 교구에서 분리된 우라와 지목구로 설립, 1957년 우라와 교구로 승격, 2003년 현재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일본사도좌대리구의 역사와 연관되어 마리오 미치아키 야마노우치 주교가 교구장을 맡고 있다. - 일본의 로마 가톨릭 교구 - 가톨릭 오사카 대교구
가톨릭 오사카 대교구는 1888년 중일본대목구로 설립, 1891년 오사카 교구 승격, 1969년 대교구로 승격 후 2023년 다카마쓰 교구와 통합하여 오사카-다카마쓰 대교구로 재편되었으며 현재 오사카부, 효고현, 와카야마현, 가가와현, 에히메현, 도쿠시마현, 고치현을 관할하고 초대 대주교는 마에다 만요 추기경이다.
가톨릭 나가사키 대교구 | |
---|---|
지도 정보 | |
일반 정보 | |
![]() | |
로마자 표기 | Archidioecesis Nagasakiensis |
일본어 표기 | カトリック長崎大司教区 |
관할 구역 | |
국가 | 일본 |
현 | 나가사키 |
관구 | 나가사키 관구 |
통계 | |
면적 | 4,192 km² |
총 인구 (2004년) | 1,500,249명 |
가톨릭 신자 수 | 67,728명 |
가톨릭 신자 비율 | 4.5% |
교구 연혁 | |
설정일 | 1876년 5월 22일 |
주요 성당 | |
주교좌 성당 | 나가사키 무염시태 대성당 |
공동 주교좌 성당 | 해당 없음 |
교구 지도자 | |
교황 | 프란치스코 |
대주교 | 나카무라 미치아키 |
명예 대주교 | 다카미 조제프 미쓰아키 |
기타 정보 | |
웹사이트 | 나가사키 대교구 웹사이트 |
2. 역사
1866년 (게이오 2년) 베르나르 프티장 신부가 일본 사도좌 대리구의 장으로 임명되어 대리구청을 요코하마에서 나가사키로 이전하면서 가톨릭 나가사키 대교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876년 (메이지 9년) 일본 사도좌 대리구가 남북으로 분할되면서 프티장 주교는 긴키, 주고쿠, 시코쿠, 규슈 지방을 관할하는 일본 남위 사도좌 대리구의 대리구장이 되었다. 1888년 (메이지 21년) 일본 중부 사도좌 대리구가 신설되어 긴키, 주고쿠, 시코쿠 지역이 분리되었고, 1891년 (메이지 24년) 6월 15일에는 교구로 승격되어 나가사키 교구가 되었다.
1923년 (다이쇼 12년), 나가사키 교구 관할 아마미오 섬 선교를 담당하던 나카무라 조하치 신부가 브라질로 이주하여 해외로 건너간 최초의 일본인 선교사가 되었다.[5] 현재 복자 조사가 진행 중이다.
1927년 (쇼와 2년)에는 가고시마 사도좌 지목구 (현재의 가고시마 교구)가 신설되면서 가고시마현과 오키나와현이 분리되었고, 7월 16일에는 후쿠오카 교구가 신설되면서 후쿠오카현, 사가현, 구마모토현, 미야자키현, 오이타현이 분리되어 나가사키현만을 관할하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 30일, 하야사카 규노스케 신부가 일본인 최초로 주교로 서품되면서 일본 최초의 자국인 교구가 되었다. 1937년 (쇼와 12년) 하야사카 주교가 사임하고 야마구치 아이지로 신부가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1952년 (쇼와 27년) 7월 19일, 가톨릭 나가사키 대교구 소유의 "주관의 마누아르(영적 수행)[6]"가 일본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59년 (쇼와 34년) 5월 14일, 나가사키 교구가 대교구로 승격되면서 후쿠오카, 오이타, 가고시마, 나하 교구를 묶는 교회 관구가 되었다. 같은 해 9월 27일, 야마구치 아이지로 주교가 대주교로 승진하였다.
1962년 (쇼와 37년) 1월 1일, 주교좌 성당이 오우라 교회에서 우라카미 교회로 변경되었다. 1968년 (쇼와 43년) 12월 19일, 야마구치 대주교가 사임하고 가고시마 교구의 사토와키 아사지로 주교가 후임으로 임명되었으며, 1969년 (쇼와 44년) 3월 16일에 착좌했다. 1978년 (쇼와 53년)에는 마쓰나가 구지로우 신부가 보좌 주교로 서품되었다.[7] 1979년 (쇼와 54년) 6월 30일, 사토와키 대주교가 일본인으로서는 세 번째로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1989년 (헤이세이 원년), 대주교 관저가 오우라 교회 부지에서 현재 위치로 신축 이전되었다. 1990년 (헤이세이 2년) 2월 8일, 사토와키 대주교가 사임하고 우라와 교구의 시마모토 가나메 주교가 후임으로 임명되어 5월 8일에 착좌했다.
2002년 (헤이세이 14년) 1월 23일, 생 술피스회의 다카미 미쓰아키 신부가 나가사키 대교구의 보좌 주교로 임명되어 4월 29일에 주교 서품을 받았다. 같은 해 8월 31일, 시마모토 대주교가 선종하여 나가사키 대교구가 주교좌 공석이 되었다. 2003년 (헤이세이 15년) 10월 4일, 다카미 보좌 주교가 대주교로 임명되어 12월 14일에 착좌했다.
2019년 (레이와 원년) 5월 31일, 나카무라 린메이 신부가 나가사키 대교구의 보좌 주교로 임명되었고,[8] 9월 16일에 주교 서품을 받았다.[9][10] 2021년 (레이와 3년) 12월 28일, 나카무라 린메이 보좌 주교가 나가사키 대주교로 임명되었고,[13] 2022년 (레이와 4년) 2월 23일에 착좌했다.[15]
2020년 (레이와 2년)에는 전 회계 책임자 신부가 2.5억엔을 무단 유용한 사건이 발생했다.[11] 같은 해 12월 15일, 나가사키 대교구의 신부에게 성적 학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다카미 대주교의 발언으로 PTSD가 악화되었다는 이유로 나가사키 대교구를 상대로 나가사키 지방 법원에 제소했다.[12] 2022년 (레이와 4년) 2월 22일, 나가사키 지방 법원은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대교구에 110.00000000000001만엔 지급을 명령했다.[14]
2. 1. 초기 역사 (1866년 ~ 1927년)
- 1866년, 베르나르 프티장 주교가 남일본대목구장에 임명됨과 동시에 나가사키 교구가 창설되어 파리 외방전교회에 맡겨졌다. 오우라 성당이 건립되었다.
- 1876년, 일본대목구가 남북으로 나뉘면서 나가사키 교구는 남일본대목구가 되어 규슈, 시코쿠, 주고쿠, 긴키 지방을 관할하게 되었다.
- 1888년, 중일본대목구가 신설되면서 시코쿠, 주고쿠, 긴키 지방이 분리되었다.
- 1891년 6월 15일, 규슈 전역을 관할하는 교구로 승격되었다.
- 1927년 7월 16일, 파리 외방전교회의 관리를 떠나 일본인 교구가 되었고, 규슈 지방에서 나가사키현을 제외한 지역을 후쿠오카 교구와 가고시마 대목구로 분리하였다. 하야사카 규노스케 신부가 초대 일본인 나가사키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일본인 최초로 주교 서품을 받았다.[2]

2. 2. 일본인 교구 시대 (1927년 ~ 1959년)
1927년 7월 16일, 파리 외방전교회의 관리에서 벗어나 일본인 교구가 되었고, 규슈 지방에서 나가사키현을 제외한 지역은 후쿠오카 교구와 가고시마 대목구로 분리되었다.[2] 초대 일본인 나가사키 교구장으로 하야사카 규노스케 신부가 임명되어 일본인 최초로 주교 서품을 받았다.[2]1937년, 하야사카 주교가 교구장을 사임하고, 야마구치 아이지로 신부가 후임으로 임명되어 주교로 서품되었다.[2]
1959년 5월 4일, 나가사키 교구는 대교구로 승격되었고, 야마구치 주교는 초대 나가사키 관구장 대주교로 임명되었다.[2]
2. 3. 대교구 승격 이후 (1959년 ~ 현재)
1959년 5월 4일, 나가사키 교구는 대교구로 승격되었고, 야마구치 아이치로 주교는 초대 나가사키 관구장 대주교로 임명되었다.[2] 1962년 1월 1일, 주교좌 성당이 오우라 교회에서 우라카미 교회로 변경되었다. 1968년 12월 19일, 고령으로 사임한 야마구치 대주교의 후임으로 가고시마 교구의 사토와카 아사지로 주교가 임명되어 다음 해 3월 16일 착좌했다.[2]1977년 11월 10일 미쓰나가 신부가 보좌 주교로 임명되어 다음 해 2월 5일 서품되었다.[2] 1979년 6월 30일 사토와키 대주교는 세 번째로 일본인 추기경에 서임되었다.[2] 1989년, 대주교 관저가 오우라 교회 부지에서 현재 위치로 신축 이전되었다. 우라카미 교회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인접한 현재 위치는, 그전까지 나가사키 공교 신학교가 있던 곳으로, 동시에 나가사키 공교 신학교도 그 옆으로 신축 이전하여 나가사키 가톨릭 신학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1990년 2월 8일, 사토와키 대주교가 교구장을 사임해, 우라와 교구의 시마모토 가나메 주교가 후임으로 임명되어 동년 5월 8일 착좌하였다.[2]
2002년 1월 23일, 쉴피스회의 다카미 미쓰아키 신부가 나가사키의 보좌 주교로 임명되어 동년 4월 29일, 주교에 서품되었다.[2] 2002년 8월 30일, 시마모토 대주교는 성지순례 여행중에 얻은 병으로 8월 31일 선종하였다.[2] 2003년 10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보좌 주교인 다카미 미쓰아키를 후임 대주교로 임명하였으며, 12월 14일에 타카미 주교는 나가사키 대교구장에 착좌하였다.[2]
2019년 5월 31일, 쉴피스회의 나카무라 미치아키 신부가 나가사키의 보좌 주교로 지명되었으며, 같은 해 9월 16일 주교로 축성되었다.[1] 나카무라 미치아키 보좌 주교는 2021년 12월 28일 나가사키 대주교로 임명되었고,[1] 2022년 2월 23일 다카미 미쓰아키 대주교가 같은 날 사임하면서 착좌했다.[2]
이 교구를 방문한 교황은 2명으로, 1981년 2월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2019년 11월의 교황 프란치스코이다.[3]
2020년에는 전 회계 책임자 신부에 의한 자금 2.5억엔 무단 유용 사건이 발생했다.[11] 같은 해 12월 15일, 나가사키 대교구의 신부에게 성적 학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다카미 대주교의 발언으로 PTSD가 악화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나가사키 대교구를 상대로 나가사키 지방 법원에 제소했다.[12] 2022년 2월 22일, 나가사키 지방 법원은 원고 여성의 주장을 받아들여 대교구에 110.00000000000001만엔을 지급하도록 명령했다.[14]
3. 역대 교구장
가톨릭 나가사키 대교구의 역대 교구장 주교와 대주교는 다음과 같다.[2]
대 | 초상 | 이름 | 임기 |
---|---|---|---|
초대 | ![]() | 베르나르 프티장 | 1866년 ~ 1884년 (18년간) |
제2대 | ![]() | 조제프 로케뉴 | 1884년 ~ 1885년 (1년간) |
제3대 | -- | 쥘 알퐁스 쿠쟁 | 1885년 ~ 1911년 (26년간) |
제4대 | -- | 장 클로드 콩바 | 1912년 ~ 1926년 (14년간) |
제5대 | 하야사카 규노스케 | 1927년 ~ 1937년 (10년간) | |
제6대 | ![]() | 야마구치 아이지로 | 1937년 ~ 1968년 (31년간) |
제7대 | ![]() | 사토와키 아사지로 | 1969년 ~ 1990년 (21년간) |
제8대 | -- | 시마모토 가나메 | 1990년 ~ 2002년 (12년간) |
제9대 | ![]() | 다카미 미쓰아키 | 2003년 ~ 2022년 (19년간) |
제10대 | -- | 나카무라 미치아키 | 2022년 ~ 현재 |
3. 1. 역대 대목구장
파리 외방전교회(18년간)
파리 외방전교회
(1년간)
파리 외방전교회
(26년간)
파리 외방전교회
(14년간)
(10년간)
(31년간)
(21년간)
(12년간)
(19년간)